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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비용 보전, 왜 국민 세금으로 지원할까?

by 1730 2025. 6. 7.

선거가 다가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어김없이 한 권의 책자를 발간합니다. 바로 '선거비용 보전 안내서'입니다. 이 책은 후보자나 정당이 선거운동을 위해 사용한 비용을 어떻게 국가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핵심은 ‘보전’입니다. 선거에 드는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나라에서 돌려주는 제도이죠.

선거비용 보전, 왜 국민 세금으로 지원할까?

그런데 이 비용,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이 사실을 접하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정치인들의 선거비용을 대신 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민주주의의 역사와 원칙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선거비용 보전, 누구에게 얼마나?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기준으로, 지역구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1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받습니다. 10~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면 절반을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해당 정당이 당선인을 배출한 경우에 한해 정당이 지출한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헌법 제116조에서 규정한 내용으로, 선거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하되 후보자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하며, 선거비용은 원칙적으로 정당이나 후보자에게만 부담시킬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민주주의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지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정치의 평등’ 정신

국가가 선거비용을 부담하는 철학적 뿌리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모든 시민이 재산과 상관없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고, 가난한 시민은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페리클레스는 공직을 수행하는 시민에게 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생활고로 인해 참여할 수 없는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 정신은 지금의 선거공영제와 닮아 있습니다.

선거운동, 왜 돈이 많이 들까?

현대의 선거운동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선거벽보, 명함, 현수막, 방송 광고, 문자 메시지 등 모든 활동이 비용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사무실 임차료, 차량 임대료, 선거로고송 제작 등 추가 비용이 더해지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됩니다.

2024년 기준,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비용 상한선은 평균 약 2억 1,800만 원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2020년보다 약 20% 이상 증가한 금액입니다. 비례대표 선거의 경우에는 무려 약 52억 원이 상한선입니다. 물가 상승률과 선거 규모에 따른 조정이지만 여전히 일반 시민이 부담하기에는 과도한 액수입니다.

돈 없는 사람도 정치할 수 있는 세상 만들기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30억 쓰면 당선, 20억 쓰면 낙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했습니다. 선거철이면 각종 금품이 오가고, 오리털 점퍼나 시계 같은 선물이 유권자에게 제공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선거공영제가 도입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당시의 핵심 과제는 바로 ‘돈 안 드는 선거’였습니다. 국가는 후보자에게 선거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며 금권 선거 문화를 타파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선거벽보, 공보물 제작 등을 국고에서 일괄 지원하고, 정당 보조금을 확대했습니다.

후보자의 재산 공개와 선거비용 초과 사용 시 당선 무효 조치도 이 시기에 도입되었습니다. 선거 운동 자금은 신고된 금융기관 계좌를 통해서만 사용할 수 있고, 모든 지출은 증빙과 함께 회계 보고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전면 공개됩니다.

선거는 ‘국민의 돈’으로 이뤄지는 일

후보자들이 유급 운동원을 고용하는 대신 자원봉사로 전환하고, 향응 제공을 금지하는 등 선거 문화는 지속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개인 후원 제도도 도입되었으며, 후원한 금액에 대해서는 세액공제가 적용됩니다. 이는 정치에 관심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합리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2002년에는 주요 정당들이 선거운동 기회의 균등과 선거비용 보전의 필요성에 합의했습니다. 일정 기준 이상의 득표를 한 후보자에 대해 선거비용을 보전하는 현재의 틀도 이때부터 체계화되었습니다.

보전받은 돈, 부정하면 돌려줘야 한다

혹시 당선된 후에 선거법을 위반하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가 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 선거비용을 돌려받은 후보자에게 선관위는 보전된 금액을 회수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는 범죄를 저지른 후보자의 재산권 보호보다, 공정한 선거 자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입니다.

마무리

선거비용 보전 제도는 단순히 돈을 보태주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 다양한 계층이 정치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낸 세금이 올바르게 쓰이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내가 낸 세금으로 선출된 정치인이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시민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선거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바꾸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회를 누구에게나 열어주기 위한 장치가 바로 선거비용 보전 제도입니다. 이제는 ‘왜 세금으로 지원하느냐’보다 ‘어떻게 더 공정하게 운영하느냐’를 고민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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